피해자 모친-시민단체, "가해경찰 처벌하라" VS 해당 경찰, "사실무근...억울"

[광명지역신문=장성윤 기자] 15년 전 보조출연자(단역배우) 집단성폭행 사건 수사과정에서 2차 가해를 했다고 피해자 유가족이 지목한 현직 경찰관을 처벌해달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러나 해당 경찰은 자신과 무관한 일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면서 진실공방은 계속되고 있다.

							단역배우 집단성폭행 피해자 어머니인 장연록 씨(사진 가운데)와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24일 광명경찰서 앞에서 가해경찰 처벌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해당 경찰은 의혹을 전면 부인하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단역배우 집단성폭행 피해자 어머니인 장연록 씨(사진 가운데)와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24일 광명경찰서 앞에서 가해경찰 처벌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해당 경찰은 의혹을 전면 부인하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시민단체, 광명경찰서 현직 경찰 처벌 요구 기자회견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정의당 광명갑지역위원회 등 40여개 단체가 24일 오전 광명경찰서 앞에서 경찰관 A씨가 집단성폭행 피해자를 2차 가해했다고 주장하며 해임과 처벌을 촉구했다.

일명 ‘단역배우 자매 자살사건’으로 알려진 이 사건은 단역배우인 피해자가 2004년 여름부터 3개월에 걸쳐 보조출연자 관리자들에게 60여 차례 성폭행을 당하면서 시작됐다. 

피해자는 2004년 11월 경찰에 가해자들을 고소했지만 2006년 고소를 취하하고, 2009년 8월 옥상에서 떨어져 자살했다. 보조출연 일자리를 언니에게 소개한 동생도 6일 후 죄책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망 당시 자매의 나이는 서른넷, 서른둘이었다. 이후 아버지는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고, 유일한 유가족인 피해자 어머니 장연록 씨는 연일 광명경찰서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장씨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성폭행을 당했다고 다 죽지는 않는다”며 “경찰이 제대로 수사만 했어도 이 자리에 있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시민단체들은 “경찰이 수사과정에서 피해자에게 ‘가해자들의 성기 크기, 색깔 등을 구체적으로 그려보라’, ‘아가씨가 12명이랑 잔 아가씨야?’라는 말을 하는 등 심각한 2차 가해를 했으며, ‘성인에게 이런 건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2006년 강제로 합의서에 지장을 찍게 해 수사를 종결시켰다”고 주장하면서 “당시 수사관 중 한 명인 A씨가 광명경찰서에 근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시민단체들은 “A씨는 광명 철산지구대장으로 근무하던 올 4월 철산지구대 앞에서 1인 시위 중인 장연록 씨에게 ‘진작 니 X은 죽었어야 했다’며 폭행해 검찰에 송치된 상태”라며 “경찰청과 광명경찰서는 A씨의 심각한 인권침해와 폭력행위에 대해 어떠한 입장이나 재발방지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편 광명경찰서는 서장이 휴가 중이어서 아직 공식입장을 내놓을지 여부에 대해 논의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경찰관 A씨, 문제의 발언 한 적 없어...고소 취하시 사건 담당 아냐

가해경찰로 지목된 A씨는 피해자 모친인 장씨와 시민단체의 주장이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당시 영등포경찰서에서 사건을 담당했던 A씨는 현재 경감으로 광명경찰서에서 근무 중이다.

A씨에 따르면 고소인(피해자)은 영등포경찰서에 집단강간 고소장을 접수했고, 여성 경찰에게 배정됐다가 장씨가 담당수사관 교체를 요구해 2005년 2월 자신이 사건을 재배당 받았다. 이후 장씨 요구로 2015년 4월말 담당자가 또 교체됐다.

실제로 A씨가 이 사건을 담당한 기간은 2005년 2월부터 2005년 4월까지 약 3개월인 셈이다. 장씨와 시민단체에서 경찰이 강제로 합의서에 지장을 찍게 했다고 주장한 2006년과는 시간적으로 차이가 있다.

A씨는 조사 당시 상황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그는 “2005년 2월 2일 장씨, 2005년 2월 3일 장씨와 피해자의 동생만 출석했는데 사건 정황은 모르는 상태였다”며 “피해자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것은 2005년 3월 23일이었고, 피해자와 장씨, 변호사가 함께 출석했다”고 말했다.

A씨는 이날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하려 하자, 변호사와 장씨가 밖으로 나갔고, 갑자기 장씨가 조사를 못 받겠다고 소리치며 딸을 데리고 가버려서 조사를 중단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피해자를 만난 적이 없으며 장씨의 요구로 2005년 4월 22일 다른 경찰이 사건을 맡게 됐다는 것이다. A씨는 "피해자를 마주한 시간은 15분 가량으로 인적사항 등 기본사항만 물었을 뿐 고소인 조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며 "문제의 발언을 한 사실이 없다"고 의혹을 부인했다. 또한 A씨는 장씨가 2018년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 소장에는 문제의 발언들은 다른 경찰이 한 것으로 적시되어 있다고도 덧붙였다.

폭행사건에 대해서는 “올 4월 15일 철산지구대 앞에서 장씨가 옷을 끌어당기고 욕을 하며, 침을 뱉길래, 팔목을 잡고 얘기 좀 하자고 했던 것이지 욕한 적 없다”며 “해당 장면이 찍힌 블랙박스 영상을 검찰에 제출했다”고 해명했다. 현재 A씨와 장씨는 이와 관련해 서로를 폭행 혐의로 각각 고소한 상태다.

A씨는 “자식을 잃은 부모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내가 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주장하니 억울하다”면서 “변호사, 시민단체, 기자 등이 참석한 자리에서 대화를 통해 장씨와 오해를 풀고 싶다”고 말했다.

성폭행 가해자들 버젓이 방송현장 복귀...구조적 문제 해결해야

한편 이런 진실공방이 계속되는 가운데 정작 성폭행 가해자들은 지금도 방송현장에서 버젓이 활동하고 있다. 두 자매를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재조사가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단역배우 자매 자살사건은 미투 운동이 확산되던 2018년 3월 재조사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글에 20만명 이상 동의하면서 재조명됐다. 이에 경찰은 진상조사 TF팀을 꾸렸지만 공소시효가 만료되고, 당시 담당수사관 중 1명이 퇴직해 해외에 있다는 이유로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흐지부지 끝내면서 요식행위라는 비난이 일었다.

시민단체들은 “2018~2019년 이슈화되면서 가해자들이 드라마 제작현장에서 배제됐으나 사회적 관심이 사그라들자 현장에 복귀했고, 보조출연자의 노동환경은 개선되지 않았다”며 “사건의 진실은 규명돼야 하고,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사과를 받아야 하며, 유사한 사건이 재발되지 않도록 사회가 변화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정부와 경찰, 방송사, 외주제작사 등이 가해자들을 방조하고 묵인하면서 피해자들이 양산되고 있다”며 ▲방송사와 제작사의 성폭력 예방교육 및 실질적인 피해자 구제절차 마련 ▲방송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정부 차원의 실태조사와 정책수립 등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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