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광명청년 잡스타트 출신, 광명시청 홍보실 사진미디어팀 김현중

“300곳도 넘게 이력서를 냈는데 면접을 보러 오라고 연락이 온 곳은 단 2곳 뿐이었어요. 1곳은 알고 보니 다단계 회사였고, 다른 1곳은 보험 영업직이었는데 바로 앞 면접자가 너무 맘에 든다고 차비 5천원을 주면서 그냥 돌아가라 하더라고요.(웃음) 이력서를 아무리 내도 번번히 실패하니까 '내가 이 사회에서 그렇게 쓸모없는 사람이었나' 하는 생각에 자책하고 우울증까지 걸렸었죠. 그렇게 포기하고 좌절했던 저에게 광명청년 잡스타트는 다시 희망을 가지고 일어설 수 있는 계기가 된 같아요. 비록 계약직이지만 제가 가장 기뻤던 건 내가 어딘가에 소속돼 내 이름이 새겨진 명함이 나왔을 때였어요.”

 						 							▲ 광명시청 홍보실 사진미디어팀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는 김현중. 그는 광명청년 잡스타트 5기 출신이다
▲ 광명시청 홍보실 사진미디어팀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는 김현중. 그는 광명청년 잡스타트 5기 출신이다

광명시청 홍보실 사진미디어팀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고 있는 김현중(31)씨. 이 팀의 막내인 현중씨는 매일 아침 7시반이면 출근해 사무실을 청소하며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약속을 하면 30분 전까지 약속장소에 가야 마음이 놓이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누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늘 부지런하다.

현중씨는 광명시가 청년일자리 창출을 위해 추진하는 ‘광명청년 잡스타트 프로젝트’ 5기 출신이다. 이 프로젝트는 청년 취업희망자를 대상으로 시청 각 부서 및 사업소, 유관기관등에서 근무하면서 맞춤형 1:1 취업 컨설팅과 취업교육, 취업알선 등을 지원하는 ‘청년 취업지원 프로그램’이다. 광명시가 2012년 7월부터 시작해 현재 11기가 진행 중이며, 그동안 7백여명의 청년들이 참여했다.

현중씨는 요즘 흔히 말하는 ‘흙수저’다. 아버지 사업이 잘 나가던 어린 시절엔 남부럽지 않게 부유했지만 아버지 사업이 부도나면서 남들보다 일찍 힘겨운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가스가 끊겨서 휴대용 가스렌지에 밥을 해먹어야 했고, 겨울에는 보일러를 틀 수 없었죠. 고등학교 때부터 막노동, 전단지 명함 배포, 주유소 아르바이트 등을 하면서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했던 것 같아요.”

대학에서 정보통신을 전공한 그는 졸업 전 강남에 있는 IT회사에 취업이 됐지만 얼마 되지 않아 회사가 망하면서 직장을 잃었다. 그 후 또 다른 IT회사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다가 객지생활로 건강이 악화돼 퇴사한 후 더 이상 일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수백통의 이력서를 내도 면접기회도 갖지 못했던 그에게는 탈출구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취업을 못한 또래 친구들이 부모님의 경제적 지원을 받아 유학을 가고, 부모님이나 그 지인 회사에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그런 뒷배가 없는 것에 부모님을 원망하는 어리석음도 범했다.

그렇게 1년 가량 백수였던 현중씨가 광명청년 잡스타트를 만나게 된 건 2014년 7월이었다. 그는 6개월간 광명시청 홍보실에 배치돼 음향보조와 디지털 변환작업을 맡아 일했다. 음향기계를 만져본 적 없던 그는 상급자에게 기계 작동법을 가르쳐달라고 사정해 한달 만에 광명5동 현판식 행사에서 음향을 전담할만큼 능력이 쌓았고, 편당 변환하는데 1시간 가량 걸리는 아날로그 테입 800여편을 모두 디지털로 변환하는 작업을 계약기간이 만료되기 전에 모두 마쳐 실력을 인정받았다.

무슨 일이든 배우려하고 열정적인 현중씨는 광명청년 잡스타트 프로젝트에서 눈에 띄는 지원자였고, 청년잡스타트 계약이 끝난 후 광명동굴에서 조명과 음향을 담당하는 계약직 근로자로 8개월간 일할 기회를 얻게 됐다. 동굴 예술의전당에서 일하는 그는 시민들에게 친절한 공무원이었다. 온도가 낮은 동굴에서 추워하는 시민에게 겉옷을 벗어주고 친절하게 길 안내를 한 것을 한 시민이 시청 홈페이지에 칭찬의 글을 올리면서 현중 씨는 양기대 시장으로부터 표창장을 받았다. 많은 시민들과 직접 만나는 광명동굴에서의 경험은 공직자로서 시민들을 위한 행정서비스의 중요함을 깨달을 수 있는 기회였다고 그는 말한다.

 						 							▲ 어딘가에 소속돼 이름이 새겨진 명함이 나왔을 때 가장 기뻤다는 현중씨의 명함
▲ 어딘가에 소속돼 이름이 새겨진 명함이 나왔을 때 가장 기뻤다는 현중씨의 명함

광명시청에서 일을 하면서 현중씨가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이 지금 일하고 있는 이곳 사진미디어팀이다. 그는 광명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 의미있는 일이고, 자신이 촬영한 사진이 광명시를 대외적으로 알릴 수 있는 홍보수단이 된다면 자랑스러울 것이란 생각에 사진미디어팀에서 일하고 싶었다. 이를 위해 현중씨는 2016년 9월 사진기능사 국가자격증을 취득했고, 계약직으로는 이례적으로 23개월간 근무할 수 있도록 채용됐다. 그는 한국사진작가협회에서 인정하는 사진작가가 되기 위해 꾸준히 외부 공모전에 출품해 5차례나 입선하기도 했다.

“관공서 보도자료의 특성상 정형화된 이미지가 언론사에 배포되지만 틈틈이 다양한 각도에서 다소 파격적인 사진들도 꽤 많이 촬영했어요. 혹시나 시장님이 다른 이미지의 사진을 찾으실까봐 모아둔 것도 있죠.(웃음)” 아직은 작은 행사에 투입되는 막내 신출내기지만 시장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공무수행하는 모습을 스케치할 수 있다는 자부심이 크다.

백수였던 그는 일을 한다는 게 행복하다. 게다가 좋아하는 사진을 찍을 수 있어서 더 행복하다. 생각이 잘 맞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즐겁게 근무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쳐야 하는 기간제 근로자다. 2018년 6월, 계약만료시기가 다가오면 현중씨는 또 앞으로의 진로를 고민해야 하고, 또 다시 치열한 취업 전선 속으로 뛰어들어야 할지 모른다. 2018년 4월 결혼을 앞두고 있는 그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더 많은 짐을 짊어지게 될 것이다. 현 정부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갈길이 멀다는 것을 알기에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스스로를 더 채찍질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이런 고민을 하는 청년이 어디 현중씨 하나 뿐일까. 바늘 구멍같은 취업문 앞에서 끝없이 좌절하고 분노하는 청년들에게 '눈높이를 낮춰라', '왜 꿈을 실현할 곳에 도전하지 않느냐'고 질책하는 것은 어쩌면 허공의 메아리가 아닐까. 하루하루가 절박해 꿈보다 생존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 그들에게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는 현중씨는 어쩌면 행복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4명 중 1명이 실업자라는 일자리 절벽시대,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땀 흘리는 이땅의 수많은 현중씨들이 힘을 내어 마음껏 도전할 수 있는 나라다운 나라, 청년들의 좌절과 분노를 쓰다듬어주는 현실적이고 질좋은 정책들이 시급히 마련돼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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